20세기 대부분 동안 의학의 기준이 된 인체는 남성의 몸이었다. 약은 주로 남성에게 시험됐고, 질병은 주로 남성에게서 연구됐으며, 70kg 남성에게 참인 것이 다른 모두에게도 참이라고 은연중에 가정됐다. 2024년, 그 유산에 가격표가 붙었다. McKinsey Health Institute(맥킨지 헬스 인스티튜트)와 World Economic Forum(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는 여성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생애의 약 25%를 더 나쁜 건강 상태로 보낸다고 추산했다. 이 격차를 메우면 2040년까지 매년 세계 경제에 1조 달러 넘게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World Economic Forum, 2024]. 이 대표 수치는 이제 기업 이사회와 보건 당국 모두에서 인용되며, 서서히 곪아 온 불평등을 정책 과제로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이 글은 '여성 건강 격차(women's health gap)' — 의학 연구에서 여성이 오랫동안 과소대표돼 온 역사와 그로 인해 뒤따른 연구비·진단·치료의 공백 — 를 짚고, 왜 이것이 갑자기 행정명령과 국가 전략, 그리고 펨테크(femtech) 투자 붐을 불러오고 있는지를 살핀다. 글 전반에서 세 개의 층위를 뒤섞지 않고 구분한다. 흐리기 쉽기 때문이다. 연구·임상 사실(연구가 측정한 것), 경제적 추정(모델이 이 격차의 가치를 얼마로 보는가), 그리고 시장·기업 주장(커지는 산업이 무엇을 파는가)이 그것이다.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이 아니며, 어떤 증상이 대수롭지 않게 넘겨지고 있다면 그것은 결제창이 아니라 의료진과 나눌 이야기다.
목차
- '여성 건강 격차'란 실제로 무엇인가
- 과학에 사각지대가 생긴 이유
- 진단의 공백: 자궁내막증과 폐경
- 왜 지금인가: 정책의 전환
- 펨테크 붐: 기대와 회의
- 무엇을 지켜볼까
'여성 건강 격차'란 실제로 무엇인가
이 표현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를 한데 묶고 있어서, 풀어서 보는 편이 좋다. 우선 연구 격차(여성이 오랫동안 연구에서 배제됐다), 연구비 격차(특정 질병이 여성에게 지우는 부담만큼 돈이 따라가지 않았다), 진단 격차(주로 여성에게 생기는 질환이 확인되기까지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치료 격차(바탕이 되는 과학이 얇아 치료법이 덜 규명돼 있다)가 있다. 맥킨지–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이 전체를 한 번에 계량하려 했다. 여성이 생애의 약 25%를 더 나쁜 건강 상태로, 그것도 대체로 한창 일하고 활동하는 경제활동기에 보낸다는 그 핵심 결론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인간적 본질이다 [출처: World Economic Forum, 2024].
1조 달러라는 수치는 조심스레 읽어야 한다. 그것은 측정된 청구서가 아니라 모델로 추정한 경제 수치다. 생산성과 경제활동 참여에 관한 가정을 바탕으로, 건강 격차가 메워질 경우 2040년까지 세계 GDP가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를 투영한 값이다. 보고서는 아홉 개 질환 — 허혈성 심장질환,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임신성 고혈압 질환, 폐경, 편두통, 자궁내막증(endometriosis) 등 — 을 분석해, 이 아홉 개만 격차를 메워도 2040년까지 연간 약 4,000억 달러의 GDP를 더할 수 있고 그중 약 2,950억 달러가 미국 몫이라고 추산했다 [출처: World Economic Forum, 2024]. 방향성 면에서 강력하고 실제 의사결정을 움직인 수치다. 동시에 그 가정에 민감한 값이므로, 대차대조표의 사실이 아니라 추정치로 인용해야 한다.
과학에 사각지대가 생긴 이유
격차를 이해하려면 규제의 역사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1977년 FDA(미국 식품의약국) 지침이 '가임기 여성'을 초기 약물 시험에서 제외할 것을 권고했다. 탈리도마이드 시대에 뿌리를 둔 이 경계심이 남성을 기준으로 연구하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출처: AAMC, 2024]. 그 결과가 비판자들이 '비키니 의학(bikini medicine)'이라 부르는 수십 년이다. 여성의 건강이 비키니로 가려지는 장기에서만 남성과 다르다고 가정한 나머지, 심장·뇌·면역계의 성차(性差)는 거의 연구되지 않은 채 남았다 [출처: MDLinx, 2023].
교정은 늦게 왔고 여전히 미완이다. 연방 연구가 여성을 충분히 포함하지 않는다는 정부 감사 결과가 나온 뒤, NIH(미국 국립보건원)는 1990년 여성건강연구국(Office of Research on Women's Health)을 세웠고, 1993년 NIH 활성화법(NIH Revitalization Act, 공법 103-43)은 NIH가 지원하는 임상연구에 여성과 소수자를 포함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다 [출처: National Academies Press, 1994]. 이 법은 규칙을 바꿨지만 현실을 온전히 바꾸진 못했다. 2024년 대규모 심혈관 임상시험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참가자 비율은 여전히 약 29%로, 질병 부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몫에 크게 못 미쳤다 [출처: JAMA Network Open, 2024]. 연구자들은 과소대표가 종양학·신경학·심장학에서 가장 심하다고 지적하는데, 하필 성차가 가장 중요한 분야들이다.
용량이 틀렸을 때
그 결과는 추상적이지 않다. 여성이 덜 연구된 탓에, 일부 허가된 약은 임상시험이 가정한 것과 다르게 여성의 몸에서 작동했다. 가장 뚜렷한 사례는 불면증에 널리 쓰이는 수면제 졸피뎀(zolpidem)이다. 허가된 지 약 20년이 지난 2013년에 이르러서야, FDA는 여성이 이 약을 더 느리게 대사해 이튿날 아침 기능 저하 위험이 더 크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여성 권장 시작 용량을 절반으로 낮췄다 [출처: HealthCentral, 2013]. 더 넓게 보면 여성은 이상약물반응(부작용)을 남성의 약 두 배 빈도로 겪는데, 여러 리뷰는 이 격차의 일부를 남성 생리에 맞춰 정해진 용량 탓으로 본다 [출처: Frontiers in Pharmacology, 2023].
돈은 관심을 따라간다 — 고르지 않게
연구비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1년 《Journal of Women's Health》에 실린 분석은 NIH 연구비를 각 질병의 부담과 견줬는데, 일관된 기울기가 나타났다. 어떤 질병이 한쪽 성에 주로 생기는 경우 대부분에서 연구비 배분은 주로 남성에게 생기는 질병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었고, 저자는 NIH가 "주로 남성에게 영향을 주는 질병에 자원을 불균형하게 배분한다"고 결론지었다 [출처: Journal of Women's Health, 2021]. 연구비가 유일한 지렛대는 아니지만, 연구 자금이 질병 부담을 따라가지 못하면 지식의 공백은 복리로 쌓인다.
진단의 공백: 자궁내막증과 폐경
연구 격차는 진료실에서 진단 격차로 드러나며, 두 질환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자궁 내막과 비슷한 조직이 몸의 다른 곳에서 자라는 자궁내막증은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추산으로 가임기 여성·소녀의 약 10%, 대략 1억 9,000만 명에게 영향을 준다 [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5]. 그런데 WHO는 진단까지 평균 4년에서 12년이 걸리며, "일반 대중과 가족, 대부분의 보건·의료 종사자는 자궁내막증이 유발하는 만성 골반통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5]. 2024년 체계적 문헌고찰은 평균 지연을 약 6.6년으로 잡았고, 나라별 편차가 컸다 [출처: University of York, 2024].
폐경은 치료 격차의 또 다른 상징이며, 그 규모는 과소평가되기 쉽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넘는 여성이 폐경 전후기(갱년기) 또는 폐경 상태에 놓인다. 폐경 관리를 찾는 여성 상당수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옹호 단체와 업계 분석에서 자주 인용되는데, 이는 실제 미충족 수요를 반영하지만 하나의 권위 있는 임상시험이 아니라 설문과 시장 분석에서 나온 값이므로 추정치로 읽는 편이 맞다. 더 단단한 것은 정책 대응이다. 2024년 11월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폐경 지침을 개정해, 호르몬 요법과 함께 비호르몬 접근을 포함한 더 넓은 선택지를 권고했다 [출처: UK Parliament, 2024].
왜 지금인가: 정책의 전환
격차는 오래됐지만 정치적 관심은 새롭다 — 바로 그것이 '왜 지금'이다. 2024년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전해 11월 출범한 백악관 여성건강연구 이니셔티브(White House Initiative on Women's Health Research)를 토대로 '여성건강 연구·혁신 진전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출처: The White House, 2024]. 이 명령에는 돈과 요구가 함께 붙었다. NIH는 2025 회계연도에 2억 달러를 새로운 학제 간 여성건강 연구에 투입하기로 했고, 보건 전담 기관 ARPA-H(보건고등연구계획국)는 1억 달러 규모의 '여성건강 스프린트'를 시작했으며, 대통령은 여성건강 연구 전용 기금 조성을 위해 의회에 120억 달러를 요청했다 [출처: The White House, 2024]. 행정부가 바뀌면 개별 약속의 지속성은 불확실해지므로, 발표만이 아니라 실제 예산 배정을 지켜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유럽도 나란한 궤도로 움직였다. 2022년 처음 제시된 잉글랜드 여성건강 전략(Women's Health Strategy)은 폐경을 우선 과제로 꼽고, 월경과다부터 폐경까지를 한 곳에서 돌보는 '여성건강 허브(women's health hubs)' 확산을 이끌었다. 2025년 3월 기준 잉글랜드 42개 통합의료위원회 중 41곳이 이런 허브를 갖췄다고 보고했다 [출처: UK Parliament, 2024]. 여러 나라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여성건강을 틈새가 아니라 시스템 인프라로 다루기 시작한 전환이며, 이는 맥킨지–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명시적으로 권한 재구성이다.
펨테크 붐: 기대와 회의
정책이 앞장서면 자본이 뒤따르고, '펨테크' — 월경 추적 앱부터 폐경 원격의료, 난임 진단까지 여성건강을 겨냥한 기술 — 는 헬스케어에서 가장 화제인 범주 중 하나가 됐다. 여기서 층위 구분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 다른 세 개의 숫자가 습관적으로 뒤섞이기 때문이다.
첫째 층위는 벤처 투자로, 거래 건별로 집계된다. 이 잣대로 보면 이 분야는 분명히 실재하지만 아직은 규모가 작다. 분석가들은 여성건강 스타트업이 2024년에 범주를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약 12억~26억 달러를 유치했다고 추산하는데, 이는 여전히 전체 헬스케어 벤처 투자의 약 2%에 불과하다 [출처: Deloitte, 2024]. 눈에 띄는 라운드들 — 월경·난임 앱이 10억 달러 '유니콘' 밸류에이션에 이르고, 폐경 케어 기업이 2026년 초 수천억 원대 라운드를 마감한 일 — 은 기업과 자금조달에 관한 주장이지 감사받은 건강 성과가 아니며, 비상장 밸류에이션은 어느 방향으로든 급변할 수 있다.
둘째 층위는 시장 규모 추정이고, 여기서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 펨테크 '시장' 추정은 2020년대 중반 기준 약 9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에 가까운 값까지 걸쳐 있고, 2030년대 전망치는 훨씬 더 높다 [출처: Grand View Research, 2025]. 이 수치들은 기기·앱·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지출을 재는 것으로, 벤처 투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상이며, 업체마다 범주를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편차가 매우 크다. 시장 전망치와 투자 총액은 아무리 같은 문단에 자주 등장하더라도 서로 바꿔 쓸 수 없다.
셋째 층위는 근거의 문제다. 펨테크의 약속은 진짜다. 더 나은 데이터, 더 이른 발견, 오래 방치돼 온 질환에 대한 돌봄. 그러나 회의적 논거도 그만큼 진지하다. 규제는 고르지 않고, 많은 소비자 도구가 임상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웰니스 주장을 내세우며, 특히 생식·월경주기 데이터를 둘러싼 프라이버시는 살아 있는 우려다. '1조 달러 기회'를 향한 투자자의 열광이 근거를 앞지를 수도 있다. 이 붐을 정당화하는 경제적 추정은 모델이고, 그것이 메우겠다는 진단 공백은 실재하며, 그 공백을 겨냥해 팔리는 제품은 임상적으로 엄밀한 것부터 검증이 얕은 것까지 폭이 넓다. 이 셋은 동시에 참일 수 있고, 바로 그래서 서로 다른 칸에 놓여야 한다.
무엇을 지켜볼까
여성 건강 격차는 현대 의학에서 비교적 잘 문서화된 불평등에 속한다. 연구에서의 배제는 기록으로 남아 있고, 진단 지연은 연 단위로 측정되며, 연구비의 기울기는 수치로 계량됐다. 이 단단한 토대 위에 지금 많은 열광이 실려 있다 — 조 단위의 경제적 추정, 수백억 달러로 재는 펨테크 시장, 아직 예산을 통과하는 중인 정치적 약속들이다. 여기서 유용한 태도는 냉소도 과장도 아니라, 어떤 숫자가 어느 층위에 속하는지를 그때그때 되묻는 습관이다.
여기서부터 지켜볼 것이 몇 가지 있다. 임상시험의 대표성이 마침내 질병 부담을 따라잡을 것인가, 아니면 1993년 법이 남긴 숙제가 네 번째 십 년으로 흘러갈 것인가? 공공 자금 — 120억 달러 요청, NIH와 ARPA-H의 약속, 유럽의 건강 허브 — 이 정권 교체와 빠듯한 예산을 견뎌 낼 것인가? 펨테크가 임상적으로 검증되고 잘 규제되는 돌봄으로 성숙할 것인가, 아니면 검증되지 않은 도구에 웰니스 상표를 붙이는 데 그칠 것인가? 그리고 1조 달러라는 프레이밍이 측정된 사실로 오인되지 않으면서 투자를 계속 이끌 것인가? 격차는 실재하며, 오랜만에 처음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것을 메우는 일은 대표 수치의 크기보다, 그 아래 놓인 연구와 연구비와 제품이 실제로 성과를 내는지에 달려 있다.